8월 4일부터 6일까지 3일 간 코엑스에서 한국 최초의 코믹콘 행사인 코믹콘 서울이 열렸다. 뉴욕 코믹콘 주관사인 리드팝의 한국 지사인 리드팝 코리아가 주최한 행사였다. 이번에 직접 참여하게 되면서 보고 느낀 점을 함께 적어보겠는데, 이미 네이버 포스트(http://naver.me/GigOSdWM)와 카카오 1boon(http://1boon.kakao.com/hero_nitko/comiccon2) 을 통해 사진과 함께 소개를 했지만, 이곳에는 좀 더 상세하고 개인적인 이야기까지 다뤄보겠다. 그런데 사진이 죄다 흔들려서 ㅠㅠ
일단 행사 전날인 목요일 저녁에 리허설 차 먼저 가봤는데, 1층이 아닌 3층이어서 상당히 놀랐다. 3층이라는 이야기는 규모가 크지 않다는 뜻, 실제로 부스 참가 업체들도 당연히 1층일 줄 알고 왔다가 당황했다고 했다. 부스 가격도 비싼 편이었고. 이미 티켓 판매 당시부터 이런저런 사고가 일어났던 터라 기대감이 거의 없었는데, 장소를 보고 한숨이 나오고 말았다. 접촉해본 몇몇 부스들 역시 참가에 의의를 두는 것으로 만족하겠다는 모습이었고, 뭐 코믹콘인데 마블/디즈니나 DC가 참가하지 않은 것부터가 우려스러운 지경이었으니…
그런데 놀랍게도 막상 뚜껑을 열어보니 기대 이상의 많은 관람객이 다녀갔다. 아침 일찍부터 늘어선 줄을 보고 깜짝 놀랐는데, 내국인 뿐 아니라 외국인들 역시 많이 찾아와 신기할 지경이었다. 한국에 있는 서양인은 전부 찾아온 것 같고, 이 행사를 위해 외국에서 일부러 찾아온 사람들도 있었다. 한편으로는 미국의 코믹콘을 기대했을 그들에게 미안함과 창피함도 들었고. 불만스러워하는 외국인을 실제로 보기도 했다. 코믹콘의 특징인 코믹스나 영화에 대한 새로운 정보도 전혀 없었고, 굿즈 역시 그다지 다양하지 못했으니 이 부분은 내외국인 가릴 것이 없이 모두에게서 나온 불만이었다.
함께 세션을 진행한 레진 엔터테인먼트 해외 법인장인 제임스 김 님 덕분에 마블 엔터테인먼트의 부사장(겸 아시아 지역 책임자)인 C. B. 세불스키를 만나볼 수 있었다. 사실 예전에 부천 국제만화축제에서 만나볼 수 있는 기회가 있었다. 그러나 당시에 평일이라 갈 수도 없었을 뿐 아니라 영어도 잘 못하는데 만나서 뭐하냐 싶어 마련해주겠다는 자리를 걷어찬 적이 있었다. 그런데 이번에 만나보니 생각보다 권위적이지 않고 먼저 다가와 말 걸어주는 그런 사람이었다.
“How are you? I’m C. B.” 하면서 악수를 해주었다. 굉장한 코믹북 덕후(우리가 흔히 nerd라고 하는)라서 살짝 우려했는데, 꽤나 말끔하고(?) 유쾌하며 다정했다. 코믹콘 기간 동안 이곳저곳에서 몇 번 만났는데 볼 때마다 반갑게 웃으며 악수해주어서 좀 감동했다. 그래서 사인회 때 맨 앞에 앉아 있다가 사인을 받았는데, 그때 역시 친절하시고 해서 좋았다. 한 군데 받으려 했는데 두 군데나 해주시고…
그리고 질의응답 시간에서 다음에 또 열리게 된다면 새로운 소식들을 첫 공개하는 장이 될 수 있도록 하겠다고 약속했다. 올해가 첫 행사라 어떻게 될지 몰라서 많은 준비를 못했다고(?). 그 분은 중국이나 다른 나라의 관련 행사들도 다녀봤기 때문에 이 정도로는 크게 실망하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그런데 통역 분께서 코믹스 쪽에 대해 잘 모르셔서 내용을 잘못 전달하는 경우가 많았다. 통역 문제는 이번 코믹콘 내내 따라붙는 문제였는데, 매즈 미켈슨이나 스티븐 연 때에도 총체적 난국이었다고(오래 지켜보지 않아서 잘 몰랐다).
행사를 가장 돋보이게 해준 것은 이런 호화게스트가 아닌 수많은 코스어 분들이었다. 수준 높은 코스프레는 말할 것도 없고, 많은 분들의 사진 요청에도 지친 기색 없이 흔쾌히 응해주시는 모습들에 박수를 보낸다. 정말 좋아서 한다는 것이 느껴졌고, 열의와 헌신의 모습 덕분에 코믹콘 서울의 꽃이 되었다고 본다.
스파이더맨으로 유명하신 쉐이드님과 애니메이션 <배트맨 TAS> 버전의 할리 퀸을 코스하셨던 와이즈님이 시공사 부스에서 코스프레를 하셨는데, 인기가 역시 대단했다. 이분들의 싱크로율과 프로 정신도 훌륭하지만 인성 역시 최고라는 관계자의 전언이 있었다. 아 진짜 내가 봐도 음료수라도 사드리고 싶을 정도였는데 쉬실 시간도 잘 없으셔서 안쓰러웠다.
또한 외국인 코스어들 중 가장 많은 인기와 호응을 얻어낸 분들 중에 원더우먼과 로건 분이 단연 압도적이었다. 캐릭터와 하나가 되는 대단한 싱크로율에 많은 인기를 누렸다. 이분들은 3일 내내 참가하셨는데, 그 밖에도 조커 등 다른 훌륭한 분들도 굉장히 많아서 놀라웠다. 사실 코스프레에 그다지 큰 관심 없었는데, 눈으로 보고 나니 엄청난 장르구나 싶고 구경만으로도 너무 재미있었다. 존경스럽기도 하고.
사실 가장 신경 쓰고 초조해하며 보고 싶어 했던 건 미드 <한니발>, 영화 <닥터 스트레인지>와 <로그 원: 스타워즈 스토리>로 유명한, 덴마크가 낳은 세계적 아이돌 매즈 미켈슨이었다. 아, 가히 폭발적인 반응의 순간… 솔직히 연예인 만나서 사인 받고 사진 찍고 그런 열정이 거의 없기 때문에 멀리서라도 보는 것만으로도 좋았는데, 진짜 세련되고 카리스마 넘치면서도 아주 부드러운 매력의 소유자였다.
이번에 한국 첫 방문이라고 하는데, 굉장히 더운 시기에 와서 그런지 여름만 있는 나라인줄 알았나보다. 덴마크는 굉장히 춥고 눈도 많이 온다고 하기에 진행하신 아나운서분께서 여기도 겨울엔 그렇다고 하니까 그럼 이사 와야겠다는 답변을… 이런 재치와 때때로 끼 부리는 표정 등을 보면 팬들이 어떤 것을 좋아하는지를 아는 게 분명하다. 촬영이 엉망진창이지만 영상도 살짝 찍어봤다.
<워킹데드>와 <옥자> 등으로 한국에 자주 다녀가는 한국계 배우 스티븐 연도 또 하나의 초호화 게스트였다. 역시 통역에 문제가 있다는 것을 알아차린 듯, 어설프긴 해도 한국어와 영어를 번갈아 가며 대화를 해주었다. 근데 어째 연예인 사진(다른 사진들도) 썩 제대로 찍은 게 없네…
하지만 사진과 사인을 얻기 위해 고가의 스타패스 티켓을 구입하고 온 관람객들에 대한 운영진의 미숙한 대처는 솔직히 심각한 수준의 문제가 있었고, 코믹콘 서울의 혹평에 가장 큰 부분을 차지하는 부분이었다.
일본의 그라비아 아이돌로 가수 겸 배우로 활동하는 시노자키 아이도 <다인>이라는 게임의 목소리 연기를 한 인연으로 초대되어 사인회를 가졌는데, 하필이면 관람객들이 적은 일요일이었고 홍보가 제대로 안 되어 나오는 줄 모르고 있었으므로 안타까웠다. 제법 매끄러운 발음의 한국어로 인사를 하고 응대하는 것을 보니 프로는 다르구나 싶었다.
그밖에도 <최유기 리로드 블래스트>의 두 일본 성우분들도 오셨고, DJ 소다의 공연, DC 코믹스의 커버를 그릴 정도로 세계적으로 인정받은 드로잉 작가 김정기님도 라이브드로잉을 선보이셨지만, 여기저기 부스에 인사 다니거나 세션 준비하느라고 제대로 보질 못했다.
기대 이상의 관객 수로 인해, 코믹스, 아트북, 설정집, 원서, 굿즈, 게임, 피규어 등을 파는 업체들의 부스는 대체로 호황이었는데, 덕분에 각 부스들은 내년에 또 열리면 꼭 나오겠다는 다짐으로 바뀌어 갔다. 가장 불리할 것으로 예상했던 금요일에 가장 많은 판매량을 보였고, 날이 갈수록 그보다는 줄어들었다고 한다. 행사 내용은 키덜트 페어나 캐릭터 페어와 비슷했지만, 판매량은 훨씬 높았다고.
그림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아티스트 앨리에는 김정기님의 부스를 비롯, 마블 코믹스의 커버들을 담당하고 있는 EGA 팀 등이 참가했는데, 공간이 너무 좁다는 느낌이 심하게 들었다. <어벤져스> 영화에서 히어로들이 뉴욕을 구한 후에 다같이 모여서 먹었던 그 음식, 슈와마를 파는 마블러스 레스토랑은 피규어 제작 업체인 쎈토이와의 합작 업체로 인해 각종 피규어를 전시하고 있었는데, 슈퍼맨, 배트맨, 캣우먼과 같은 DC의 캐릭터와 일본 만화의 피규어들도 전시해두어 말이 나왔다. 유일한 음식 판매 부스라서 사람들이 줄을 섰는데, 먹지 않았지만 보니까 샌드위치나 케밥 비슷한 모양새였다.
마블 스토어에서는 포토존을 마련하기도 하고 제품 판매도 했는데, 영화에 실제로 사용되었다는 토르의 묠니르와 다크 엘프의 무기가 전시되었다. 그런데 이 무기에 대한 설명을 제공해드렸는데, 내가 못 알아듣고 약간 엉뚱한 내용을 전달드린 바람에 소용이 없게 되어 민망했다.
블리자드 부스에서는 미국 코믹콘에서도 볼 수 없었다는 초대형 파라 스태츄가 압도적인 자태를 자랑하며 코믹콘의 랜드마크가 되어주었다. 진짜 크고 대단했는데, 운반하기에도 쉽지 않았을 것 같았다. DC의 모기업인 워너브러더스는 엉뚱하게도 <저스티스 리그>가 아닌 <애너벨>과 <그것>을 홍보하고 있어서 빈축을 사기도 했다. 다소 이해할 수 없는 기획이었다고 본다.
이 외에도 샌디에이고 코믹콘에 참가할 기회를 얻을 수 있는 코스프레 컨테스트가 있었는데 역시 못 봤다.
나는 금, 토 이틀 동안 밸리언트 코믹스를 소개하는 “밸리언트 101”과 코믹북에 대한 취미 등을 다루는 “한국에서 코믹북 팬으로 살아남기”, 이렇게 두 개의 세션을 진행했는데 역시나 부족한 점이 많았다. 의자를 잘못 골라서 계속 자세가 이상하게 있었다거나 머릿속의 생각을 엉뚱하게 전달한다거나… 시간을 맞춰서 한다는 거에 신경쓰느라 그런 것도 있었고.
사람 다섯 명이나 모일까 걱정했는데, 다행히도 의자 있는 곳이 없었던 덕분에 앉아서 쉬시는 분들이 많이 들어주셨다. 어느 순간 보니 뒤에 서서 보시는 분들도 가득이더라. 그런데 무대 위에서 하는 방식이었기 때문에 관객들을 상대로 더 편안하게 진행하기 어려웠다.
어쨌든 이 모든 건 세션을 함께 진행한 레진 엔터테인먼트의 제임스 김님 덕분이다.
코믹콘 서울이 3일 동안 돌아볼 정도로 많은 볼거리가 있었는가 하면 그렇다고 말하긴 어렵다. 솔직히 게스트만 아니라면 몇 시간이면 다 볼 수 있는 양이었으니.
피규어와 굿즈, 코스프레, 게임이 유난히 강조된 행사였기 때문에 또 하나의 키덜트 페어가 아니냐는 비아냥을 들었지만, 코믹스가 활성화되지 않은 우리나라 현실로 볼 때엔 어쩔 수 없는 부분이기도 하다. 실제로 북미 지역을 제외한 각 나라별로 열리는 코믹콘은 상당 부분 그 나라에 맞게 성격이 변형되어 열린다고 한다.
한편으로는 미국 현지에서 열리는 코믹콘도 이와 비슷하다. 게임과 일본 만화의 영향력이 커진 부분도 있어서 단순히 코믹스 뿐 아니라 팝컬처 전반을 다 다루고 있다. 물론 슈퍼히어로 코믹스와 영화 부분이 더 강조되었더라면 하는 아쉬움은 있다.
DC와 마블의 정발 도서를 판매하는 시공사 부스와 디즈니와 마블, 블리자드 등의 아트북과 백과를 판매하는 아르누보, 각종 코믹스와 소설의 원서를 판매한 통인북스, 마블 상품들을 판매하는 마블 컬렉션 스토어가 아니었다면, 기대했던 코믹콘은 아니었을 것이다. 하지만 일반 관람객들은 즐거웠다고 하니 실패했다고 볼 순 없을 것이다. 실제로 관람객이 많이 몰리기도 했고.
주최 측의 몇몇 실수들로 인해 논란이 많았지만 내년에 2회가 열리게 될 확률이 높아 보인다. 주최 측을 비난하기 위해 쓴 글이 아니라, 조금이나마 준비과정을 보고 들어보니 그쪽도 나름대로 최선을 다하려 애썼던 것을 알겠다. 첫 행사라 생각 못한 문제가 터져 나왔고 예상을 넘는 관객수로 인해 코믹콘 앱의 서버가 터지기도 했다. 타겟을 코믹스 팬보다 일반 서브컬처 팬으로 잡은 것도(우리나라 현실상 그럴 수밖에 없기도 했지만) 오히려 잘 한 결정이라고 생각한다. 내년에 2회가 열리게 된다면 이번보다 더 나은 규모와 발전한 모습으로 본고장에서 느끼는 감동과 재미를 즐길 수 있게 되지 않을까 하는 희망을 가져본다. 그리고 점차 코믹스 관련 내용도 늘어가고 그로 인해 국내 시장도 커질 수 있지 않을까.
단지 희망적인 바람만이 아닌 것이, 리드팝 본사 관계자분이 내내 지켜보셨기 때문에 어떤 문제점이 있는지를 다 알고 계셨다. 만족스럽다는 반응과 실망스럽다는 반응이 동시에 나왔지만, 어찌됐든 이런 행사가 열릴 수 있는 토대가 나왔다는 점에서 의의를 찾아볼 수 있겠다.
개인적으로 업계 관계자 분들을 한 자리에서 만날 수 있었던 것과 평소 만나기 힘들었던 몇몇 분들(온라인 지인분들)을 만날 수 있어서 반가웠다.